조셉 후버투스 필라테스(Joseph Hubertus Pilates)는 1883년 12월 9일 독일에서 태어났다. 그는 선천적 으로 약하게 태어난 탓에 류머티스열과 천식 그리고 구루병을 앓았고 약한 호흡기로 힘들어했다. 조셉은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체와 마음을 강화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권투, 펜싱, 레슬링, 요가 등 다양한 운동을 통해 동작을 만들어내고 신체와 정신의 통합으로 이상적인 몸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30세가 되던 1913년에 서커스 덤블러로 일하였던 조셉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영국으로 갔다. 그 다 음해인 1914년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으며, 그는 전쟁 기간 동안 서커스단 사람들과 함께 맨 섬(Isle of Man)의 포로수용소에 외국인으로 수용되어 있었다. 수용소에는 2만 4천명이 함께 수용되어 있었는데 수용소에 있는 동안 그는 수용자들에게 매일 운동을 시켰고 그것은 훗날 그에게 피트니스와 운동지도자 로서의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다. 1918∼1919년의 인플루엔자 유행이 일어났을 때, 그와 운동했던 수 감자 중 누구도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조셉은 수용소 감독자들의 주목을 받아 병원에서 부상당한 환자들을 돌보게 되었고 30명의 환자들을 맡아, 움직일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매일 운동을 시켰다. 이 당시는 수술과 진통제 이외의 치료법이 거의 없었으나, 조셉은 운동으로 환자가 더 빨리 회복하도록 도왔고 2차 감염을 예방하기도 했다.
조셉은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에게 침대 프레임에 스프링을 부착하여 운동을 시키는 것을 개발하였고 이것이 최초의 기구 리포머가 탄생한 것이다. 1924년 베를린에서 “Universal Reformer”로 알려진 장비 를 특허에 등록하였다.
수용소에서 풀려나 독일로 돌아온 후, 트레이너로 일하던 조셉은 독일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배를 탔고 그의 세 번째 아내인 클라라를 만나게 되었다. 유치원 교사였던 그녀는 조셉의 진정한 파트너로 그 의 운동법 개발에 큰 역할을 하였고 스튜디오를 운영하는데도 필수적인 파트너가 되었다.
1926년, 조셉과 클라라는 뉴욕 8번가에 New York City Ballet이 있던 건물에 작은 스튜디오를 임대했고, “Contrology”라는 운동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항상 새로운 운동 기구를 개발했고 그의 일생 동안 Universal Reformer, Wunda Chair, Cadillac, Ladder Barrel, Spine Corrector 및 기타 많은 훌륭한 발명품을 만들었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군복무 기간까지 삶의 전반적 측면에서 몸과 마음의 건강에 대한 그의 비전을 소개 하는 것을 꿈꿨다. 이러한 시간이 없었더라면, 그의 업적을 당시에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는 소 수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을 헌신적이고 지속적으로 가르쳤으며 자신의 혁신적 생각을 그들이 받아드릴 때까지 훈련시켰다. 조셉은 그의 비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과 수많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으나, 일생동안 그의 업적에 대한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1967년, 조셉의 스튜디오는 화재로 소실되었고 그 후, 그는 화재 연기로 인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그의 아내 클라라는 1977년에 사망할 때 까지 조셉의 사명을 이어 나갔다.